Trieste_대륙의 전쟁 - Epilogue. 에필로그: 또 다른 시작
| 21.02.03 12:00 | 조회수: 6,941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참혹한 현장에 세그날레들이 나타났다. 모습을 감추었던 타마라도 그들과 함께였다.

“타마라.”

“….”

“그들을 어디로 빼돌렸지?”

“도망친 것 같습니다.”

“네 말을 믿지 않는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타마라는 땅을 보며, 눈을 숨겼다. 무의식이라도 캄비라 바투와 에바가 사라진 방향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먼저 남아있는 벌레들을 처치하고.”

카론이 부활하자 이계의 힘을 받아들여 괴물이 되어버린 노라크 교도들. 세그날레들은 피의 채찍으로 그들을 청소했다.

“이제 좀 개운해지는군. 그 동안 카론이 큰 골칫거리였는데. 세 개의 세상에 낀 꼴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카론을 없앴으니, 이제. 이계도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거야. 그렇지 않아? 타마라?”

타마라는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종족인 세그날레들에게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베네디카 지역에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검은 하늘은 계속해서 땅 가까이로 내려왔다. 순진한 척 밝고 티 없는 것은 하나가 되어 버린 달뿐이었다.

네디앙 비노쉬는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 아이리스 비노쉬는 비나엘르 파라이에게 당했다. 이제 세지타족의 앞날은 자신이 꾸려야 한다. 네디앙 비노쉬는 강하게 마음 먹으며 대륙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방주 아르카나가 있고, 차원의 문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뜻을 지켜드려요.”

강하다기보다는 부드러운 네디앙이었지만, 이제는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 큔!”

라 큔. 원래 어머니에게 붙여진 칭호였다. 어머니가 죽은 지금, 그 자리를 이을 사람은 네디앙이었다. 네디앙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외침에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바기족입니다.”

선발대의 말에 곁에 있던 세지타족들은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예전, 아이리스 비노쉬가 세지타족을 이끌 때라면, 길을 가로막은 바기족은 당연히 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덴 근처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먼저 치는 것이 좋을까요?”

네디앙 비노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세지타들은 네디앙의 말에 놀랐다.

“바기족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데카론들이 필요한 시점에서, 같은 땅에 사는 우리가 싸우는 것은 소모전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글쎄요. 내가 이야기 해보겠어요.”

“라 큔!”

“그래요. 이제 내가 세지타족을 이끄는 라 큔이에요. 그러니 나를 믿고 따라주세요.”

네디앙 비노쉬는 세지타들을 이끌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갔다.

“라 큔! 이계의 생명체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내 눈에도 보이네요. 하지만, 가로막지는 않았어요.”

“…!”

“저길 봐요.”

바기족이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창이나 검을 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몸으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간간히 마법 같은 것을 쓰는 것 같이도 보였다.

“저들은 창과 도끼를 들지 않았었나요?”

“자덴에 정착한 후, 자신들의 무기를 새로 개발한 것 같습니다.”

“하긴, 저 체구에, 창과 도끼는 너무 가냘플지도 모르겠군요. 저들에게는 자신의 몸과 힘, 그리고 억압받아 온 역사에서 생긴 정신력이 가장 큰 무기일 거예요.”

네디앙은 바기족과 함께 방주 아르카나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생각은 세지타 뿐 아니라, 로드 샤인도 했다.

“함께 가고 싶소.”

바기족은 네디앙에게 정중히 말했다. 세지타족 앞에 나타난 바기족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 숫자였다. 족히 십만 여명은 될 것 같았다. 바기족을 이끄는 자의 이름은 로드 샤인이라고 했다.

“캄비라 바투님이 자덴을 떠나신 후, 차근차근 힘을 키워왔소. 이제 바기족도 드디어 나설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네디앙은 미소 지었다. 바기족은 거만하거나 불량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네디앙은 그들이 믿음직스러웠다.

“함께 동행해 주신다면, 카론이 아닌 이계의 그 무엇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군요.”

네디앙과 로드 샤인은 손을 잡았다.

아이언 테라클은 누트 샤인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잠시 당황했지만 쉽지 않게 다음 해야 할 일을 정할 수 있었다. 트리에스테 대륙의 땅이 갈리며 대지진이 일어났고, 두 개의 달이 겹쳐졌다. 그것은 어디에서든 가리온을 통해 카론을 부활시키는 의식이 진행됐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였다.

“의식이 어디에서 벌어진 것 같은가?”

“아무런 정보가 없기는 하지만. 일단 누트 샤인은 북서쪽을 향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어떻게 확신하오?”

아이언 테라클은 잔바크 그레이의 말에 토를 달았다.

“누트 샤인이 죽었다면, 의심 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하나. 비나엘르 파라이뿐 입니다. 그의 상처를 보셨지요? 예리하게 찔렸는데 흘러 나온 피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쇠로 된 칼이 아닌 다른 것에 찔렸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크루어도 쇠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소. 보시오. 크루어는 은 검이오.”

델카도르는 잔바크 그레이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델카도르에게 아이언 테라클은 무식한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나엘르 파라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언 테라클은 델카도르에게 물었다.

“비나엘르 파라이는, 아마도 헬리시타 아니면 파르카 신전으로 갔을 겁니다.”

“그래.. 그 둘이 비나엘르 파라이가 가장 갈 만한 곳이지. 그렇다면, 서둘러 헬리시타부터 가자.”

조디악 아이언 테라클과 인카르의 군대가 돌아왔지만, 헬리시타의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환영할 인파도 없었다. 헬리시타 역시 대지진으로 지옥이었다. 대신 아이언 테라클은 네디앙이 이끄는 세지타족과 로드 샤인이라는 자가 이끄는 바기족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언 테라클님.”

네디앙은 격식을 차려 인사했다.

“네디앙.”

아이언 테라클은 세지타족을 살피다 물었다.

“아이리스 비노쉬는 어디 있지?”

네디앙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돌아가셨습니다.”

“뭐어!”

아이언 테라클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

“비나엘르 파라이님을 막으시다가.”

“그렇다면 역시!”

델카도르의 의심이 맞았다. 카론의 부활을 준비한 것은 비나엘르 파라이였다.

“카론은 이미 부활했습니다.”

“…!”

“하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을 거예요. 칼리지오 밧슈가 카론의 힘을 이미 어느 정도 막아뒀을 테니까.”

“무슨 말이지? 자세히 말해보게.”

네디앙은 아이리스 비노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아이언 테라클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칼리지오 밧슈는 알로켄이자 인간이었습니다. 둘 다 배신할 수 없어서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비나엘르 파라이님은 칼리지오 밧슈의 아내였습니다.”

“이런! 세상에!”

“비나엘르 파라이님은 남편인 칼리지오 밧슈를 늘 그리워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비나엘르 파라이님이 그 때문에 두 번째 그랜드 폴까지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지만, 조디악이셨던 아모르 쥬디어스님이 알로켄 시대 서기관이었던 누트 샤인의 뒤를 밟다가.”

네디앙은 잠깐 로드 샤인을 쳐다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나엘르 파라이님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었고, 그 분을 막기 위해 방주 아르카나에서 함께 했던 분들을 모으셨습니다.”

“아이리스 비노쉬도 그 중 하나였군.”

“네.”

네디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개의 달이 이미 겹쳐진 것으로 보아 비나엘르 파라이님을 막는 것은 실패하신 듯 합니다.”

“그의 부고가 정말이지 안타깝네.”

아이언 테라클은 네디앙을 위로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트리에스테에 희망은 있습니다.”

“…!”

“보세요. 두 개의 달이 겹쳐졌는데도 트리에스테는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검은 안개가 깔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카론의 힘이 전 보다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는 있지요.”

“그렇군!”

“하지만. 걱정되는 일도 있습니다.”

“무엇인가?”

“칼리지오 밧슈는 마법사이자 현자였기에, 차원의 문을 다시 닫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설사 가리온 일행이 카론을 물리쳤다 해도, 차원의 문은 열렸지요.”

“역시 이계의 문은 열린 것인가?”

“네. 지금도 열려 있을 거예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이제. 카론보다 더한, 이계의 악마들이 트리에스테를 탐하려 하겠죠. 어쩌면 알로켄들도….”

모두가 앞으로의 막막함에 침울했다. 단 한 명. 아이언 테라클을 제외하고. 아이언 테라클은 생기 넘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로군!”

아이언 테라클의 눈이 또렷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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